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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윤항기 부인 정경신 첫만남과 러브스토리가 흥미롭네요.

사실 윤항기가 배우자(정경신)의 혼전임신으로 겨우 결혼에 성공했었죠.

 

# 목차

 

* 윤항기 윤복희 여러분

* 윤항기 부인 정경신 직업

* 윤항기 아내 정경신의 헌신적인 간호로

* 윤항기 음악 목사가 되어서

* 윤항기 목사 은퇴 이후에

* 윤항기의 인생을 보며

 

 

* 윤항기 윤복희 여러분

 

 

윤복희의 '여러분' 역시 윤항기가 만든 노래입니다.

 

윤항기: "여동생(윤복희)이 20살 어린 나이에 결혼에 한번 실패했고, 또 1977년 (가수 남진과) 재혼했지만 결국 이혼하고 말았다. 그때 동생은 방 밖으로 나오지 않을 정도로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래서 만든 곡이 바로 '여러분'이었다."

 

결국 윤항기는 이 노래로 1979년 서울 국제가요제 대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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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항기 부인 정경신 사진

 

* 윤항기 부인 정경신 직업

 

윤항기가 한창 인기가 있을 때 한 여학생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현재 윤항기 아내 정경신이었죠.

(윤항기 부인 정경신 직업 - 당시 숙명여대 가정과 1학년 학생)

 

윤항기: "내가 키보이스로 활동할 당시에 아내는 내 공연때마다 따라다니던 열성팬이었다. 나 역시 아내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그런데 아내의 집안은 당시 광산업을 하던 유복한 가정이었고, 우리의 교제를 반대했었다. 그래서 아내의 외출을 막기 위하여 (처가에서) 머리카락을 몽땅 잘라서 집안에 가둬두기도 했다."

(윤항기 부인 집안)

 

정경신: "당시 키보이스가 인기가 많았지만, 젊은 친구들 위주였고 어른들은 잘 모르셨다. 그래서 부모님은 남편을 그저 딴따라로만 생각하셨다."

 

결국 정경신은 집에서 탈출을 했고, 둘은 이태원 여인숙에서 신접 살림을 차리게 됩니다. 

 

윤항기 아내 정경신 사진

윤항기: "가족으로부터 축복받지 못한 결혼 생활을 시작했기에, 아내가 마음 고생, 육체적인 고생을 많이 했다."

 

그리고 첫아이를 낳은 뒤인 1973년에야 처가의 인정을 받고 정식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죠.(윤항기 배우자 와이프 정경신)

 

이후 윤항기는 딸 4명에 아들 1명을 낳게 됩니다.

(윤항기 자녀(자식))(윤항기 가족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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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항기 아내 정경신의 헌신적인 간호로

 

윤항기: "베트남 위문 공연을 할 때 한번은 폐결핵에 걸려서 귀국하기도 했다."

 

윤항기: "한때 볼링에 미쳐서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빚을 얻어 재산을 탕진할 때도 있었다. 또한 밤마다 유흥업소에서 노래를 부르고 끝나고 나면 주변 사람들과 밤새 진탕 놀았다."

 

윤항기는 마약중독자였던 아버지를 미워했고 그런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를 닮아갔습니다.

 

또한 폐결핵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기도 합니다.

 

윤항기: "인기 가도를 달리던 1977년 가수왕 기념 축하 공연장에서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당시에 의사가 폐결핵 말기라며 6개월도 살기 어렵다고 했다.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었다."

 

윤항기: "그런 나를 살린 사람이 바로 아내였다. 당시 폐결핵은 강한 전염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떠났다. 병원도 갈 수 없었다. 그런데 아내는 나를 떠나지 않았고, 주사법(주사기 사용법)까지 배워서 나를 간호했다. 아내 덕분에 내가 살 수 있었다."

 

윤항기 가족 사진(왼쪽부터 윤항기 아들과 며느리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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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항기 음악 목사가 되어서

 

정경신: "남편이 때로는 미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남편의 가장 좋았던 모습은 가요를 시작하기 전에 미8군에서 활동할 때의 모습이었다. 당시 남편이 레이 찰스 노래를 참 잘했다."

 

정경신: "(나중에 남편때문에 속이 상할 때도 있었지만) 레이 찰스 노래를 들으면 그때(윤항기가 미8군에서 활동하던 시기)가 생각이 나고, 남편에 대한 미운 감정이 해소됐다."

 

결국 6개월 시한부 인생이었던 윤항기는 아내의 간호로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윤항기 이혼, 윤항기 재혼 등은 루머임).

 

이후에 종교적으로 귀의하여 '음악 목사'로 활동하기까지 합니다.

(그 전에도 윤항기가 교회를 다니기는 했지만, 이렇게 종교에 대하여 열정적이고 목회자가 된 것은 폐결핵이 나은 다음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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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항기 목사 은퇴 이후에

 

윤항기: "내 재능을 살려 음악으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싶었다. 전국의 교회를 다니면서 음악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윤항기: "1990년에 미국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사실 아버지를 죽어서도 용서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는데, 목사 안수 받으면서 용서할 수 있었다. 용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되는 것이더라."

 

이후 윤항기는 음악 목사로 25년동안 활동하다가 정년 퇴임한 다음에 다시 가수로 컴백하게 됩니다(윤항기 목사 은퇴).

2015년에는 데뷔 55주년 기념 음반 '걱정을 말아요'를 발표하기도 했죠.

 

그런데 이 노래 '걱정을 말아요'는 윤항기가 직접 작곡하고, 아내 정경신이 작사를 하게 됩니다.

부부가 이렇게 노래를 같이 만드는 모습도 보기 좋네요.

 

참고로 윤항기는 올해(2016년) 55주년 기념 공연을 개최할 예정입니다.

원래 2014년이 데뷔 55주년인데, 당시 공연들이 여러가지 사정으로 미뤄지면서 올해 공연을 열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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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항기의 인생을 보며

 

윤항기의 인생을 보면 천국과 지옥을 번갈아 오고간 것 같습니다.

엘리트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사실은 첩의 자식이었고,

아버지가 유명한 음악가였지만 마약중독자가 되어서 재산을 거덜냈으며,

윤항기 본인은 청계천에서 거지 생활을 하다가 음악을 배우고 가수가 됩니다.

 

또한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했지만, 본인이 음악을 하고 인기를 얻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처럼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런 윤항기가 폐결핵으로 시한부 인생 결정이 났을 때,

아내의 헌신적인 간호와 종교에의 귀의를 통하여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었죠.

 

인생이란 본인 마음먹기에 따라서, 그리고 주변의 도움 덕분에

천국이 될 수도, 지옥이 될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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