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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모 장소현 러브스토리 및 인생 이야기

 

탤런트 정성모는 상당히 동안입니다. 정보석과 더불어 상당히 젊은 외모를 가지고있는데, 여기에는 그의 사고방식도 일조를 하는 것 같네요.

 

정성모는 14살 연하와 결혼하게 됩니다. 탤런트(그중에서도 특히 남자들)중에는 상당히 어린 사람과 결혼하는 경우가 많은데, 거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 같네요.

 

 

탤런트 겸 영화배우 정성모는 1956년 10월 20일 전라북도 장수군에서 태어납니다(정성모 고향). 올해 59살이죠(정성모 나이).

(정성모 학력 학벌) 안양예술고등학교 연극영화과, 서울예술대학 영화과

(정성모 프로필 및 경력) 1982년 MBC 15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

 

단역에 전전하던 정성모는 1985년 MBC 단막극 베스트셀러극장 '낮보다 밝은 밤'으로 신인상을 수상합니다. 이후 젊은 날의 초상, 인간시장 등에 출연했지만 빛을 보지 못하다가 1995년 모래시계에서 큰 인상을 남기게 됩니다.

 

이후 바람은 불어도, 정 때문에, 신돈, 개와 늑대의 시간, 제빵와 김탁구, 제왕의 딸 수백향, 사랑만 할래 등의 드라마와 모노폴리, 신기전 등의 영화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정성모는 어린 시절부터 연기자의 꿈을 꾸게 됩니다.

정성모: "중학생 땐 TV를 접하기 힘드니까 영화를 보려면 극장에 가야했어요. 그러다 우연히 본 게 진 캐리 주연의 극장용 뮤지컬이에요. 주인공의 모습이 무척 멋져 보이니까 내가 꼭 그걸 해봐야겠다 싶은 거예요.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 In The Rain)’, ‘파리의 아메리칸(An American In Paris)’ 같은 영화를 보면서 배우의 꿈을 키웠죠."

 

정성모: "특히  ‘사랑은 비를 타고’를 보는데 온 몸에 전율이 감돌더라고요.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한 뒤 부모님께 말씀드렸는데 일언지하에 안된다고 하셨어요. 당시에는 배우 일 자체를 직업으로 인정하지 않던 시절이었고, 어릴 때부터 똑똑하고 야무졌던 아들이었기에 다른 일을 하길 바라셨죠. 아버지 반대 때문에 하마터면 대학을 못 갈 뻔 했어요."

 

결국 고등학교와 대학을 연기와 관련된 학과로 진학하게 됩니다.

그리고 1982년 공채 탤런트로 데뷔를 하기는 했는데, 이 시험 역시 쉽게 합격하지는 못합니다.

 

정성모: "4전5기 끝에 82년 합격했어요. 그때는 공채탤런트 시험이 유일한 등용문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절실했죠. 떨어질 때마다 ‘이 것 아니면 안된다’며 마음을 다잡고 계속 문을 두드렸어요. 조형기·맹상훈·이영범씨가 동기인데 한 4,5년 전까지는 자주 모였어요. 지금은 서로 바빠져서 가끔 연락만하며 지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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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탤런트가 된 정성모지만, 초반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합니다.

 

정성모: "드라마 제작국에 대본이 들어오면 아침에 일찍 가서 가져다가 보는 습관이 있었어요. 가보면 녹화된 대본이나 녹화되기 전의 대본이 쌓여 있어요. 몰래 하나씩 빼다보니까, 나중엔 어떤 감독이 그러더라고요. ‘야, 이놈의 자식아, 그만 가져가라’고."

 

그러다가 1985년 친하게 지내던 동료 맹상훈이 베스트셀러 극장 '낮보다 밝은 밤'에 캐스팅됩니다.

 

정성모: "그 친구가 늘 우리 집에 와서 같이 잠도 자고 그랬거든요. 어느 날 상훈이가 ‘낮보다 밝은 밤’ 대본을 가져왔어요. 대본을 보다가 제가 이 역할은 누가 하느냐고 물어봤죠. 근데 아직 캐스팅이 안 됐다는 거예요. 보니까 내가 하면 진짜 잘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웃음) 스무번 이상을 보고 또 봤어요."

 

정성모: "선우완 감독(당시 감독)은 원래 영화감독으로 드라마 연출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떨리는 심정으로 “아직은 연극 몇 편 외에는 이렇다할 대표작이 없지만 정말 하고 싶다”고 말했다. 여러 번 만날 약속을 했고, 그때 나는 속으로 ‘이 정도 열의를 보였으니 배역을 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성모: "집에 가면서 맹상훈과 극중 배역을 위한 의상을 구입하기 위해 남대문시장에 들렀다. 그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제대로 된 의상을 입을 수가 없었다. 돈도 없는 전과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시장에서 한 벌에 1백 원이던 허름한 옷들을 5천 원어치나 사니 큰 가방으로 하나 가득 되었다. 그 옷들을 둘러메고 당당하게 방송사로 들어왔다. 하지만 감독께서 “정성모씨 열의는 알겠는데 당신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작품을 할 때는 열의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고 했다. 예상 외의 반응에 당황했다. 아무리 못 봤어도 20번 이상 대본을 볼 정도로 욕심이 났었는데,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쉬움을 떨치지 못했다."

 

 

정성모는 이 한 작품을 위해 대단한 열정을 보이지만, 그것이 감독을 만족시켜주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결국 감독의 마음을 움직였죠.

 

정성모: "한 일주일쯤 후 감독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그 역에 내가 캐스팅되었다는 것이다. 정말 열심히 했다. 내가 원하는 작품에서 주인공을 한다는 사실은 나에게 힘을 주었고 어려운 장면들도 즐겁게 촬영할 수 있었다."

 

정성모: "단순한 행동파였던 나는 좌충우돌하는 장면들이 많았다. 항구 옆 조그마한 어시장에서 깡패와 쫓고 쫓기는 상황을 찍을 때였다. 나는 내복 차림으로 도망쳐야만 했는데, 추운 겨울에 맨발로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나를 사람들이 불쌍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어시장 바닥의 흙탕물이 전부 내복에 튀어 등까지 시커멓게 물이 들었던 것이다."

 

정성모: "또 대도를 본 뒤 실망하고는 자살하기 위해 바다에 뛰어드는 장면을 촬영할 때다. 나는 그때 수영을 좀 했기 때문에 자신이 있었고 맹상훈도 수영을 못하는 편이 아니었다. 우리는 대사를 말하며 헤엄을 치고 나아갔다. 나는 정신없이 헤엄을 쳐 겨우 배에 닿았다. 그런데 따라와야 할 맹상훈이 보이지 않았다. 어느샌가 몸이 굳어 물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던 거다. 다급히 배에 시동을 걸었는데 너무 오래 끄고 있어 시동이 잘 걸리지 않았다. 간신히 시동을 걸어 맹상훈을 구했다."

정성모: "물에서 건져진 우리는 정신은 말짱했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나무토막이었다. 이를 불쌍하게 여긴 주민이 방에 불을 지피고는 우리를 그 안에 넣어 몸을 녹여주었다. 담요를 몇 겹씩 두르고 뜨거운 방안에 들어가 있으니 그제야 몸이 녹으며 덜덜 떨려왔다. 그날 옆으로 누워있던 나는 옆구리가 벌겋게 되었고 바로 누워있던 맹상훈은 결국 엉덩이에 화상을 입고 말았다."

 

정말 한 작품을 위해서 정성모와 맹상훈이 있는 모습 없는 모습을 다 보여준 것 같습니다. 아마 그 만큼 그들이 절박했기 때문이었겠죠.

 

정성모: "이 한 작품으로 나는 그해 신인 탤런트상을 받았어요. 아마 방송사상 <베스트셀러 극장> 한편으로 신인상을 탄 배우는 없을 겁니다. 개성 있는 배우로서의 자질을 처음으로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기뻤죠. 신인상을 타고 난 후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아! 나는 다 됐구나. 이제 뭔가 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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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모 젊은 시절 과거 사진

 

정성모: "하지만 한두 달이 지나도 배역이 주어지지 않았어요. 석 달, 넉 달이 지나가자 ‘이럴 거면 상은 왜 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신인상이라는 건 평생 한번 받아볼 수 있는 상이지만 그 상보다 더 중요한 게 연기를 하는 것인데, 그런 상황이 만들어지지 못했으니 좌절할 수밖에 없었죠."

 

그러다가 정성모는 무려 6개월만인 '갯마을'이라는 드라마에 출연합니다.

그리고 이후에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합니다.

 

연습장을 가야 하는데 버스비가 없어서 눈치를 봤고, 제대로 먹지 못하고 맹훈련을 거듭한 끝에 무려 10kg이나 살이 빠지기도 했죠.

 

그러다가 정성모는 13년만인 1995년 드라마 모래시계로 주목을 받게 됩니다.

당시 정성모는 보디가드 역의 이정재를 극중 살해해 의리없는 깡패의 대명사가 되는 이종도 역을 맡게 됩니다.

 

모래시계의 고현정 이정재 사진

 

정성모: "제 인생을 ‘모래시계’ 이전과 이후로 나눠서 말해야할 정도로 중요한 작품이죠. 그 전까지는 운동권 학생, 기자 등 정의롭고 부드러운 역할을 주로 했는데 ‘모래시계’의 악역 종두를 연기하면서 ‘내게 이런 부분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많은 걸 깨달았거든요."

 

정성모: "(모래시계의) 이종도역을 한 뒤, 집에 있을 때면 이정재를 좋아하는 여성들의 끊이지 않는 협박전화를 받았고, 또 호텔 주차장에서는 덩치 좋은 사람들(조폭)이 큰형님이라고 악수를 청해 등에 식은땀이 줄줄 흐르기도 했다."

 

정성모: "(이종도 역이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했기에) "전라도 사람 망신은 혼자 다 시킨다."는 항의 전화도 많이 받았다. 목욕탕에서 만난 중년신사는 넌지시 "진짜 본성이 좀 나쁜 사람이 아니냐?"고 물었다. 제가 대답이 궁해 쩔쩔매는 것을 보고서 "연기를 잘하길래 농담 한마디 했다."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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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정성모는 모래시계에서 악역 연기로 빛을 봤고, 이후 악역과 선역을 넘나들면서 좋은 연기력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정성모는 모래시계가 흥행하기 전인 1993년 12월 14살 연하의 장소현(이름)과 결혼하게 됩니다(정성모 아내(부인)장소현)(정성모 배우자 나이차이).

생활고와 제대로된 배역을 맡지 못해 결혼이 늦어진 것이죠.

 

물론 잘나가는 연예인들중에는 인생을 즐기다가 나중에 어린 여자와 결혼하거나 이혼을 여러번 하는 경우도 있지만, 정성모처럼 무명으로 고생하다가 뒤늦게 결혼하는 경우도 있죠.

특히 남자들에게는 결혼전에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기 때문에, 결혼이 더 늦어지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정성모 장소현 부부 사이에는 연년생 아들과 딸이 한명씩 있습니다(정성모 아들 정현우)(정성모 자녀 자식)(정성모 가족 관계).

 

정성모 아들 사진

 

참고로 정성모가 젊은 시절 고생을 많이 했는지, 생각이 무척 깨인 사람입니다.

 

정성모: "저는 친구의 폭이 상당히 넓어요. 10년 아래로도 편한 친구가 있고 나보다 몇 살 위로도 편하게 대하는 친구가 있어요. 그런 부분에는 (사고가) 열려 있는 편이에요. 소통하지 못하고 교감하지 못하면 배우라는 일을 하기가 상당히 힘들거든요. 내 것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걸 나만 가지고 있으면 안 되잖아. 상대방도 공감해야 하는 부분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나이로 제약되는 부분들에서 멀어지고 싶어요.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자유로이 행동하고 말하고 싶어요."

 

정성모: "제가 강한 이미지의 배역을 많이 맡아서, 젊은 친구들 보면 나한테 가까이 오는 걸 힘에 부쳐해요. 근데 난 굉장히 소탈하고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사람이에요. 기존 이미지를 불식시켜야 된다는 책임감에 때로는 장난을 건다든가, 요즘 유행하는 신조어를 묻거나 배우는 등 나름대로 노력을 해요. 내가 편안한 선배로 다가간다고 해서 그 친구들이 날 거침없이 막 대하는 건 아니거든요. 상호간의 예의가 있으니까. 그 정도 예의를 취하면서 서로 마음을 연 대화를 할 수 있게끔 행동해요. 워낙 연예계 선후배 사이가 그렇고 그렇다 보니 누가 먼저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면 편한 관계가 형성되지 않거든요."

 

아마 이런 사고방식도 정성모 동안의 비결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깨달은 것을 아들에게도 전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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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모: "아들 초등학교 때 한번 간적이 있고, 그 이후로는 간적이 없어서 미안하다. 하지만 이제는 아들도 어느 정도 자아가 형성됐다. 그런 아들을 보면 뿌듯하다."

 

정성모: "내가 아들한테 어릴 적부터 친구들을 많이 사귀어라고 항상 얘기했다. 아들이 친구들과 이렇게 많이 놀러오고 그런 것을 보니 기분좋다. 나이를 먹다 보니깐 과거 알았던 친구들이 새록새록 기억나고 친구들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정현우: "집에서는 자상한 아빠인데 화면에서는 나쁘게 나와(악역이어서) 어색하다. 거리감이 있긴 한데 좋은 아빠다."

 

정성모는 이런 성향으로 사업을 하기도 합니다.

바로 스마트폰 통역시스템(토키아)를 개발한 씨에스엘아이(CSLi)라는 번역 IT업체였죠(실질적으로는 씨에스엘아이마케팅컴퍼니).

 

 

정성모: "이걸 개발한 젊은 친구들과 원래 친분이 있었어요. 옆에서 지켜보면서 자연스럽게 한두 가지 아이디어를 냈었죠. 그러다 ‘이렇게 한번 해보는 건 어떨까’ 해서 같이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굉장히 재미있어요. 전혀 새로운 콘텐츠니까요. 통역 없이도 이 시스템 하나로 외국인과 대화를 할 수 있어요. 언어의 소통이 자유로워져요. 일본어 교차통역 시스템을 최초로 개발해서 일본인과 통화도 가능해요. 한국말로 말하면 그쪽에선 일본어로, 일본어로 얘기하면 난 한국말로 알아들을 수 있죠. 스마트한 세상이 열리면서 각광받게 된 솔루션이에요."

 

정성모: "젊은 사람들과 조찬도 하면서 개발 회의도 해요. 조찬 하니까 대단해 보이죠? 김밥 먹으면서 해요. 젊은 친구들의 상상력은 놀라움 그 자체에요. 우리가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을 하잖아요. 그 꿈이 지금 이루어지고 있고, 그 사실만으로도 놀라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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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사람들의 상상력이 대단하긴 한데, 정성모의 사고방식 역시 그것을 받아들일 정도로 깨어있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었을 것 같네요.

 

물론 정성모닌 사업가보다는 연기자가 우선입니다.

정성모: "난 그냥 연기자에요. 연기를 포기하면서까지 이 일을 하는 건 아니에요.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연기에요. 기업인이라는 건 나한테 거추장스러운 단어가 아닌가 싶어요."(정성모 직업)

 

정성모: "하지만 연구원들이 연구 개발에만 매진하다 보니 마케팅은 상대적으로 소홀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렵게 개발한 제품이 빛도 못 보게 사장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내가 팔아보겠다고 자청했죠. 중소기업들과 서로 상생할 수 있는 기업을 만드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요."

 

젊은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 정성모가 대단한 것 같네요.

많은 중장년층이 젊은이들과 격의 없는 소통을 원한다고 말은 하지만, 그것을 실제로 해내는 사람은 무척 드물죠.

그런 의미에서 정성모는 우리 사회와 청년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사회 선배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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