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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현섭 인생이야기

 

개그맨 심현섭을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시대적 상황을 잘못 만나는 바람에, 인기 절정의 개그맨이 한순간에 몰락을 했네요.

 

심현섭 사건(심현섭과 윤도현의 갈등), 심현섭 아버지, 심현섭이 결혼하지 못한 이유 등을 짚어보면서, 대통령과 우리 정치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코미디언 심현섭은 1970년 5월 6일 광주에서 태어납니다(심현섭 고향). 올해 45살이죠(심현섭 나이).

(심현섭 학력 학벌) 예일초등학교, 구산중학교, 중동고등학교, 서울예술대학 시각디자인과

(심현섭 프로필 및 경력) 1996년 SBS 공채 개그맨 5기로 데뷔

 

사실 1994년 MBC 일요일 일요일밤에 개그박스의 일원으로 출연했다가 이후 SBS에서 정식으로 데뷔합니다. 그리고 1990년대 후반 KBS로 이적해서 김대중, 이다도시, 앙드레 김 등의 성대모사 등으로 주목을 받았고, 개콘(개그콘서트) 사바나의 아침에서 추장 역을 맡으면서 인기를 끌게 됩니다.

 

덧붙여 봉숭아학당, 스크림, 공포극장 등으로 한때 대세 개그맨이 되기도 합니다.

 

 

심현섭 아버지는 심상우였습니다.

바로 광주 출신의 유명한 기업가 겸 정치인이었죠.

 

원래 심현섭 할아버지 심만택이 호남전기공업을 창업했고, 이를 장남 심상하와 심상우가 발전시킵니다(후에 심상하는 호남전기그룹을 만들었고, 호남전기공업은 현재의 (주)로케트전기의 전신이 됨)(심현섭 집안 재벌).

 

심현섭 아버지 심상우는 호남전기공업 사장, 전남매일신문 사장, 광주일보 초대 회장 등을 두루 역임하다가 1980년 전두환에 의해서 청와대 비서관으로 발탁이 됩니다. 그리고 1981년 제 11대 총선에서 전남 광주 동구 북구 민정당(민주정의당)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민정당 전두환 총재 비서실장(청와대 대통령실장)에 임명됩니다(당시에는 대통령이 집권 여당의 총재를 겸했음)(심현섭 아버지 심상우 직업).

 

심현섭 아버지 심상우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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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현섭: "아버지가 광주항쟁 직후 광주에서 민정당 후보로 출마해서 당선되실 정도였죠. 인덕이 있으셔서 당선되셨을 겁니다."

 

심현섭: "아버지는 탁월한 유머감각과 예술적인 재능을 갖춘, 하지만 너무나도 소탈하신 분이었어요. 약주를 한잔 드시고 오면 음악을 틀어놓고 저와 함께 춤을 추곤 하셨어요. 늘 낚시를 같이 다녔는데 그때도 쉴 새 없이 저를 웃기는 모습에 영향을 많이 받았죠."

 

심현섭: "은행에 근무하시던 어머니가 맘에 들어 1년여 동안 매일 찾아가 50원씩 저금을 하셨대요. 어머니는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떨고 있는 모습이란 것을 알지 못하고 ‘저런 무뚝뚝하고 엉뚱한 사람이 다 있을까’라고만 생각을 했대요. 하지만 예금이 1만 5,000원이 넘었을 때 결국 청혼을 받아들였답니다."

 

이렇게 심현섭은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영향을 크게 받으며 자랍니다. 그러다가 1983년 심상우가 아웅산테러 사건으로 사망하게 됩니다(북한의 테러로 우리나라의 각료와 대통령 수행원 17명이 사망한 사건. 당시 북한의 목표였던 전두환은 일정이 늦어져 생명을 건짐).

 

 

심현섭: "TV 뉴스를 통해 사고 소식을 접하고 넋이 나갔어요. 현실로 받아들이기 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죠. 떠나시던 날 저를 안아주시던 느낌이 가시지 않더군요."

 

당시 심현섭이 겨우 14살때였으니, 충격이 굉장했을 것 같네요.

(참고로 심현섭 형이 좀 유명한 심진섭(학원인)입니다. 심현섭 가족)

 

그렇게 심현섭은 성장해서 개그맨이 되었고, 1990년대 후반부터 2002년까지 절정의 인기를 구가합니다.

 

심현섭: "무명생활을 할 때는 힘들었지만 희망이 있어서 견딜 수 있었죠. 아이러니하게도 정상에 서니 불안하면서 우울증이 오더군요. 정상에 선 기분은 ‘머리채를 잡혀 끌려 다니는 느낌’ 같은 거예요. 차라리 무명 시절이 없었으면 그런 생각을 안 했을 겁니다. 다시 무명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더 열심히 한 부분도 있었어요."

 

심현섭: "최정상이라고 느끼는 것은 사인회를 하고, 내가 나온 방송을 모니터하고, CF를 찍을 때도 잘 몰라요. 어느 순간 모자를 쓰고 다녀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 깨닫습니다. 섭외전화가 하루에 100통 이상 올 때 실감이 나는 거죠. 8년을 무명으로 지냈으니 10년은 정상을 지켜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4년 만에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마약을 했거나 범법행위를 하지 않고 그렇게 된 예는 없어요."

 

이렇게 심현섭의 말처럼 그는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바로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이후부터였죠.

 

 

심현섭: "아버지가 못다 이룬 꿈을 제가 이어가기 위해 나선 것으로 오해하시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정치 쪽으로 나갈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제가 뭘 알아야 정치를 하죠. 정치는 정치를 아는 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명세를 이용해 정치해볼까, 그건 아닌 것 같아요."

 

2002년 연말에 논란이 많이 벌어집니다.

 

심현섭: "대선을 사흘 앞두고 KBS 고위 간부가 저에게 “연말 KBS 연예대상 코미디 부문 대상 수상자로 결정됐다”고 통고했어요. 하지만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가 낙선한 후 열린 시상식에서는 제 이름이 호명되지 않았죠."

 

당시 대상 수상자는 신동엽이 됩니다. 사실 당시의 인기로 놓고 본다면, 신동엽보다 심현섭에게 상이 돌아갔어야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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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에 격분한 심현섭 소속사와 심현섭은 SBS로 이적해서 웃찾사(웃음을 찾는 사람들)에 출연합니다. (이때 같이 옮긴 동료들이 김준호, 김대희, 박성호, 황승환, 이병진, 이태식, 김미준, 김숙, 강섬범 등의 스타밸리 소속 개그맨임)

 

하지만 웃찾사에서는 개콘만큼의 웃음을 보이지 못하고, 동료들은 하나둘씩 떨어져 나갑니다. 심현섭 역시 이때를 기점으로 인기가 급속도로 추락하게 되었죠.

 

(또한 당시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출연금지 논란도 있었음. 심현섭은 자신의 정치적인 성향때문에 윤도현의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못했다고 주장함)

 

 

후에 이명박 정권때 윤도현, 김제동, 김미화 등의 퇴출 논란이 일어나는데, 사실상 심현섭이 원조격이네요.

 

 

당시 노무현 정권의 실책은 이런 일을 잘 살펴보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노무현 본인이 이런 일을 지시하지는 않았겠죠.

아마 노무현의 측근이나 (정치권에 아부하려는) 방송국의 고위직의 짓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처럼 대통령의 권한이 강한 나라에서는 대통령 스스로 조심하는 것만으로는 모자라고, 이렇게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있는지 널리 살펴봐야 합니다.

 

만약 그랬다면, 당시 아부하려던 방송국의 고위 간부나 측근 같은 기회주의자에게 문책을 가하고, 심현섭 같이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의 원한을 풀어줄 수 있었으며, 심현섭 사건으로 두고두고 우파로부터 공격당하는 일이 없었을 겁니다.

 

(또한 그런 기회주의자가 높은 자리에 올라가봤자, 정권에 누가 되고 국민은 불행해질 뿐이죠.)

 

 

사족으로 우파는 심현섭의 예를 들면서 "심현섭이 당했으니까, 윤도현, 김제동, 김미화 역시 당해야 한다"고 보복의 정당성을 주장합니다. 이렇게 보복을 위한 정치를 하면, 모두가 불행해질 뿐입니다. 끊임없이 악순환만 반복될 뿐이니까요.

 

비록 전임자가 잘못을 했더라도 후임자는 똑같은 잘못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우리 사회가 더 나아질 수 있는 길'이죠.

 

 

심현섭: "선볼 때 여자분이 ‘뭐하세요’라고 물어요. 그건 ‘뭐 먹고 사세요’라는 말이거든요. TV에 나오던 사람이 안보이면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이나 봐요. 설득할 말도 없고 해서 선보는 걸 그만두었어요. 벌써 마흔 중반인데 이제 결혼해야죠. 그저 마음 맞는 사람이면 돼요."

 

아직 심현섭은 결혼하지 않은 미혼입니다(심현섭 아내 부인 없음). 

심현섭은 한동안 방송 출연을 못했기에 벌어놓은 재산도 별로 없을 것 같네요.

그리고 행사는 뛰지 않고 '스타맥스'라는 드라마 제작사에서 기획이사로 일하게 됩니다(가문의 영광, 아내의 유혹, 압록강은 흐른다 등을 제작)(후에는 SK핸드볼 코리아컵 객원해설과 의료기기정보기술지원센터 홍보대사를 맡기도 함).

(사실 심현섭이 방송사를 옮긴 것은 그가 격분했기 때문이지만, 그 이후에 감을 잃은 것은 그의 책임인 것 같습니다. 만약 그에게 '능력'이 있었다면,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얼마든지 방송에 출연할 수가 있었으니까요.)

 

큰 돈을 벌 수는 없지만, 평범한 샐러리맨 생활도 나쁘지 않죠.

심현섭은 선을 본 여자에게 이런 사정도 설명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네요.

아마 '경제적인 조건'을 따지는 상대에게 실망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심현섭에게는 '돈만 바라보는 배우자'가 아니라 진정으로 행복과 고락을 같이할 수 있는 배우자가 필요한 것 같네요.

어서 빨리 좋은 짝을 만나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으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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