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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기 박지영 러브스토리와 인생 이야기

 

세월호 참사로 너무나 많은 무고한 생명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목숨을 잃은 분들 뿐만 아니라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 역시 하늘처럼 높고 바다처럼 넓습니다.

 

그런 분들이 예전에 자식을 잃었던 이광기의 이야기를 통해서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하네요.
게다가 이광기의 이야기에서는 특히 주목해야 할 점도 있습니다.

 

 

탤런트 겸 영화배우 이광기는 1969년 4월 10일 서울에서 태어납니다(이광기 고향). 올해 46살이죠(이광기 나이).
(이광기 종교 불교에서 기독교로 개종)
(이광기 학력 학벌) 명지대학교 
(이광기 프로필 및 경력) 1985년 해돋는 언덕으로 데뷔(아역배우)

 

드라마 삼국기, 왕과 비, 태조 왕건, 야인시대, 장희빈, 하노이 신부, 인수대비, 정도전(하륜 역) 등과 영화 소름, 휘파람 공주, 그녀를 모르면 간첩 등에 출연합니다.

특히 2000년 태조 왕건에서 신검 역으로 좋은 연기력을 보여주었고, 예능에서도 한때 별명이 탤개맨이었을 정도로 활약이 대단했습니다.


이광기의 인생은 정말 버라이어티합니다. 웃기면서도 슬프고, 그 가운데 감동까지 있죠. 연기자로의 데뷔 역시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고등학교 때 친구 따라 탤런트시험 보러 갔다가 우연히 합격했는데, 사실 그것이 탤런트 시험이 아니었습니다.

 

 

이광기: "친구놈이 방송국에 탤런트 시험 보러 가는데 같이 가자는 거예요. 그래서 같이 가주마 하고 따라갔다가 붙은 거죠. 그런데 그게 나중에 알고 보니 KBS가 아니고, 한국방송문화예술학원이었던 거예요. 하하. 한국방송... 이러니까 우린 당연히 KBS인 줄 알았는데, 연기학원이었던 거에요. 강부자 선생님 등 KBS드라마에서 많이 보던 연기자들이 심사위원으로 계시니까 우린 당연히 KBS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이광기: "시험에 합격했더니 돈을 내라는 거예요. 학원비 말이에요. 당시 몇십만 원을 냈어요. 그땐 이게 아주 큰돈이었죠.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집안이 넉넉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전 학원비를 달라고 했어요. 어차피 제가 상위권 학생도 아니었고, 예체능계라는 느낌이 딱 있었거든요."

 

사기는 아닌데, 확실히 이름이 무언가 KBS 비슷하네요. 청소년들은 충분히 착각할만 합니다.
이렇게 연기학원에 등록하게 된 이광기는 열심히 연기 공부를 시작했고, 우연히 기회를 잡습니다.

 

이광기: "제가 학원에서 열심히 하니까 학원 원장님이 오디션을 보게 해주셨어요. 당시 최상식 감독님이 절 보셨는데, 원하는 중학생 배역에 너무 나이 들어 보여 안 되겠다! 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

 

이광기: "아, 이게 끝인 모양이구나, 무거운 발걸음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촌각에 제가 그랬죠. '감독님 저 머리 자르면 어려 보여요!', 밤톨만한 놈이 그렇게 말하니까, 그럼 내일 한번 와봐 하시더군요. 머리 깎고 찾아갔더니 눈이 동그래지면서 대본 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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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이광기의 연기에 대한 집념이 대단하네요. 대부분 어떻게든 머리카락을 기르려고 애쓰던 청소년 시절에 결코 평범하지 않은 결단력 같습니다.
결국 이에 감동한 감독이 이광기에게 조그마한 배역을 주었고, 이광기는 데뷔하게 됩니다.
하지만 결과는 별로였습니다.

 

이광기: "당시 '해돋는 언덕(1985년작)'은 윤석화, 최재성, 김민자, 추송웅 선생님 등 호화캐스팅이었어요. 그런데 이 드라마가 시청률 저조로 4개월 만에 종영돼요. 당시 경쟁 드라마가 MBC의 <한지붕세가족>이었거든요."

 

이광기: "쫑파티 하는데 왜 그렇게 서러운지... 겨우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난 하나도 보여주지 못했는데, 뭔가 좀 보여주려고 하니 막이 내렸죠. 여의도에서 광화문까지 걸어갔어요. 홍은동 가려면 광화문에서 73번, 8번 버스 타야 했거든요. 딴 데 가서 타도 되는데 그냥 광화문까지 간 거예요."

아주 어릴 때부터 인생이 롤러코스터였네요. 

 

 

그후 이광기는 별다른 작품을 만나지 못하고 군대에 입대했다가 제대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록카페에서 일하게 됩니다.

이광기: "친구가 하는 록카페의 주방에서 알바를 뛰었죠 방송 일이 없으니까... 그 자식이 나랑 친한데, 꼭 일을 하면 인건비를 하루치 적게 주는 거예요. 다 주면 관둘까봐. 울며 겨자 먹기로 일했는데, 그때 우리 집사람을 만났어요."

 

이광기: "제가 또 그때 카드를 배웠어요. 도박에 완전 미쳤죠. 소소한 '삥발이'지만, 1000원짜리도 모이면 커지니까 만날 가게에서 밤새는 거예요. 집사람 만날 시간도 없이, 눈 뜨면 카드하고 그랬어요."

 

결국 당시 여친(여자친구)였던 박지영과 헤어지게 됩니다.
아마 박지영 역시 도박에 미친 이광기에게 무척 실망을 했을 것 같네요.

 

이광기: "생각해 보면 제대하고 8개월은 빡세게 도박만 했던 것 같아요. 아주 집중적으로... 아내와 헤어지고 나서 충격을 받고 그 생활을 청산하고 방송국 연예인축구단 총무하면서 아침형 인간으로 바뀌었죠. 근면성실하게 사니 집사람에게 다시 전화가 오더군요. 다시 만났죠. 그런데 구애하고 결혼하려는데 처가에서 반대하는 거예요."(이광기 아내 박지영 직업)

 

이광기: "그때 우리 집사람이 대학원 다닐 땐데, 사윗감이 백수면 그렇지 않느냐, 가게라도 해라, 그래서 엄마 집을 담보로 2000만 원 대출받아 사업을 시작했어요. 뭘 할까 고민하다 할 수 있는 건 포장마차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죠." 

 

이광기 아내 박지영 사진

 

이렇게 이광기는 포장마차 주인이 되어서 다시 박지영과 만나게 되고 나중에 결혼하게 됩니다. 이때라도 정신을 차려서 다행이네요.
그런데 박지영 집안이 대단하네요. 당시로서는 이광기가 탤런트로서의 생명도 거의 끝난 듯이 보였고 당시 백수였는데, 그런 이광기를 포장마차 주인으로라도 만들어서 딸과의 교제를 허락했으니까요.

 

참고로 이광기 아내 박지영의 나이는 이광기와 동갑이고 종교는 기독교입니다. 이광기가 아내의 영향과 큰 슬픔으로 개종하게 되죠(이광기 부인, 이광기 배우자).

그러다가 이광기는 2000년 드라마 태조 왕건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또 이듬해에는 쟁반노래방으로도 대중에게 호감을 삽니다.

 

이광기와 박지영 부부 사이에는 아이들이 두명 있습니다. 딸 이연지와 아들 이석규가 있었는데, 이석규는 지난 2009년 신종플루로 잃고, 2012년 늦둥이 이준서를 얻게 됩니다(이광기 자녀 자식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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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광기가 아들 이석규를 잃게 되는 경위가 자못 마음이 아픕니다.

석규는 2009년 11월 6일 오전에 집 근처 개인 병원에서 목감기로 진단을 받았고, 7일 오후 7시 정도 갑자기 상태가 악화되자 일산병원 응급실로 급하게 옮깁니다.
일산병원에서는 폐렴 진담을 받고 검사와 치료를 받던 중 8일 오전 3시에 갑자기 호흡곤란으로 사망하게 됩니다(이광기 아들 사망원인).

 

불과 이틀이 안되던 짧은 시기에 허망하게 아들을 잃은 것이죠.

그런데 사건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생전에는 신종플루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사후 검사에서 신종플루 양성이 나왔던 것이죠.
결국 의료사고가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이광기는 재판을 걸지 않습니다.

 

이광기: "의사들은 그들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봐요. 우리 아이가 살아올 수만 있다면 병원을 상대로 무슨 짓을 못하겠어요.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의료진도 우리도 너무 고통스럽고 무의미한 분쟁이 될 거 같았죠. 아이를 보내고 집에 와서 기도를 하는데 처음부터 회개가 나오더군요. ‘죄송합니다. 40년 넘게 다 내 것인 줄 알고 착각하고 살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우리 아이 예쁘게 하늘에서 키워주실 거라고 믿습니다’라고요."

 

 

사실 당시만해도 우리나라에는 신종플루가 별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경각심 역시 별로 없었고, 감기와 비슷한 증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 뻔했는데, 유명인이었던 이광기의 아들 사건으로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게 되었죠.

 

이광기: "어떤 선배가 ‘광기야, 석규 덕분에 많은 아이들이 타미플루(신종플루 계절독감 치료제)를 처방받아서 살 수 있게 됐으니 석규는 천사다’라고 얘기했지만, ‘왜 다른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내 아이가 선택받아야 하나. 다른 아이를 통해 내 아이가 살았더라면…’하는 원망을 수도 없이 했어요. 40대 평범한 가장으로 남들처럼 아이와 함께하는 소소한 행복들을 누리고 싶었죠."

 

이광기: "병원 영안실에 있는 동안 탈진해 응급실에 실려가 링거 주사를 맞고 있는데 밖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어요. 신종플루로 실려온 아이의 아버지가 타미플루를 달라고 하는데 의사는 양성 판정이 나오기 전까지는 안 된다고 하며 다투고 있는 거에요. 그러자 아이 아버지가 의사 멱살을 잡고 ‘당신, 내 아들이 이광기 아들처럼 되면 책임질 거야’라고 고함을 지르더군요."

 

이광기: "그 소리를 들으며 이를 악물고 울었어요. 나는 왜 저 아버지처럼 저렇게 강하게 의사 멱살을 잡지 않았을까. 나중에 얘기 들으니 그 아버지도 타미플루를 받아갔고, 조금만 증상이 있으면 다 나눠줬다고 하더군요. 그때는 모든 게 너무 혼란스러웠고, 아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결국 이광기 아들의 죽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신종플루에 더욱더 적극적으로 행동하게 되면서 수많은 목숨을 살리게 됩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다행이지만, 이광기 박지영 부부에게는 더없는 아픔일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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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큰일을 당하면 금슬이 좋은 부부라도 이혼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과 분노가 배우자에게 잘못 향해질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광기 박지영 부부는 현명하게 위기를 잘 넘깁니다.

 

박지영: "슬픈 일을 겪고 더 단단해졌어요. 힘든 일은 금방 지나가요. 견뎌내기가 참 힘든데,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일단 받아들여야 해요. 받아들임이 고통이지만, 그래야만 지나올 수 있어요. 결국 시간이 약이고요."


그리고 이광기는 '일과 봉사'에 집중하게 됩니다. 군 제대 후에 노름에 빠졌다가 아내 박지영 덕분에 새사람이 되었고, 이렇게 아들을 잃은 후에 다시 거듭나게 되는 점이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위기를 슬기롭게 넘기지 못해서 본인과 가족을 괴롭히거나 파멸하게 되죠.

 

이광기: "많은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외치고 있지만, 막상 혼자 돌이켜보면 제대로 사랑하지 않아요. 물질로 커버하는 것을 사랑으로 착각하고 있더라고요. 그런 것들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표현할 수 있는 게 제가 받은 하나의 은혜예요. 그렇게 제가 변했고요. 해보니까 나눔이라는 게 별것 아니더라고요. 손 한 번만 꼭 잡아줘도 사랑이 느껴져요. 마음이 손을 통해서 전달되잖아요. 그게 나눔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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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기는 2010년의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아이티에도 직접 봉사를 하러 떠납니다.
그리고 거기서 중요한 사실을 목격하게 되죠.

이기광: "어린이와 남편 잃은 싱글맘들이 제일 안타까웠어요. 워낙 어려운 나라였던 데다 배급마저 원활하지 않으니까 자칫 잘못하면 금세 폭동이 일어나요. 우린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먹는 것 때문에 사람 죽는 일이 발생한다니까요. 잘못 나눠주면 칼부림 일어나고. 그래서 배급할 땐 반드시 UN군이 있을 때 딱 나눠주곤 했어요."

 

이광기: "요즘은 그나마 안정을 찾았다고는 하지만, 어느 나라든 기득권자, 있는 사람들이 NGO 상대로 장사하고, 뱃속 채우고 그럽디다. 아이티 기금 마련한 돈을 갖고 쉽게 못 들어가는 이유가 바로 거기 있어요. 차량과 숙소 렌탈 정말 허름한데도 값은 유명호텔 수준이에요. 워낙 다 무너졌으니까요."


그런 참상이 벌어진 상태에서도, 기득권층은 장사를 하고 있네요.
허름한 숙소 렌탈이 유명 호텔 수준이라니... 
오죽하면 이광기가 기금을 마련한 뒤에도 들어가기를 망설였을까요.

 

자신의 돈으로 빈민을 돕지는 못할 망정, 자기 나라의 대지진으로 무너진 빈민들을 도와주러 온 사람들에게 그런 엄청난 폭리를 취하다니...

세월호 사건과 많이 비슷하네요. 

 

 

자본(선주 청해진해운)은 탐욕에 눈이 멀어서 일본의 폐기 직전 선박을 수입해 와서 개조하고, 또 적정 화물 이상으로 짐을 실었으며, 화물 결박도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은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기 위해서였죠.

 

그리고 정부 역시 선령 제한을 20년에서 30년으로 늘렸고, 안전검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죠. 이 역시 정치인들과 해피아(해수부 관료 마피아)들과의 탐욕과 무능력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에게는 슬픔과 동정심보다는 탐욕의 마음이 더 큰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런 사람들도 막상 본인과 가족이 그런 일을 당하게 되면 달라지겠죠.
실제로 세월호 같은 연안 여객선에서 전직 선장과 항해사들은 배가 위험해서 많이 떠났습니다. 아마 선박 안전 검사를 맡은 기관의 사람들과 해수부 공무원들, 정치인들과 그 가족들은 절대 이런 배를 이용하지 않았을 것 같네요.
실제로 멋모르던 서민들과 어린 학생들만 이용하다가 이렇게 떼죽음을 당하고 말았죠.


이렇게 이광기는 아이팀의 참사 현장에서도 인간의 탐욕을 제대로 꿰뚫어봅니다.

이런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좀 더 좋은 쪽으로 개선시킬 수 있으면 좋으련만...

기득권 세력 때문에 별로 쉽지 않네요.

어쨌든 아들을 잃는 불행에서 이광기와 박지영 부부는 서로를 믿으며 일과 봉사로 슬픔을 기쁨으로 바꿔 나갑니다.

 

감히 주제넘게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충고를 할 처지는 아닙니다.
다만 힘내시라는 말씀만은 전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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